왜 독립문은 다른 곳이 아닌 서대문형무소가 가까운에 서대문 현저동에 세워진 것일까요? 서대문 형무소는 과연 독립공원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실은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말 일제의 강압으로 지어진 감옥으로 우리 근대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우리 민족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일제의 대표적인 탄압기관으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투옥되어 고문을 받고 처형되거나 옥사당했던 장소였습니다. 1908년 10월 서대문 현저동에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출발, 1912년 마포에 경성감옥을 신설함과 동시에 종래의 경성감옥을 서대문감옥으로 개칭한 것입니다. 당시 수용인원이 500여명 남짓했던 경성감옥 말고 마포의 경성감옥이 신축이 된 이유는 1910년 망국을 전후한 시기에 국권회복을 도모한 많은 민족 운동가들이 일제에 체포되었기 때문. 한국을 영구 식민지화하려는 계획에 많은 민족운동가들이 항쟁하였고 서대문의 감옥에 그들을 수용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니 실로 분노에 차지 �을수 없는 사실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광복후 1945년 11월 21일에 서울형무소로 그 이름이 바뀌고, 1961년 서울교도소로, 1967년에 서울구치소로 바뀐 뒤 1987년 11월에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옮긴 후1992년에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개원된 것입니다. 공원에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비롯 사적 제32호 독립문과 사적 제33호 영은문주초,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등이 있는 민족의 성지랍니다.
근래에 들어서야 서대문형무소가 우리민족의 독립투쟁사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니 실로 한국인으로써 우리것을 잘 모르는 죄를 범했음의 죄의식에 독립공원을 찾아 보았습니다.
찾아가기에도 아주 손쉬운 것이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4번이나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접해있습니다. 두번째 사진은 지하철역을 나오자마자 펼쳐져 보이는 독립공원의 모습입니다.
송재 서재필선생의 동상
일요일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독립공원은 다른 공원들에 비하여 훨씬 쾌청하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 도시 내 맑은 공기와 녹푸른 자연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는것 같습니다.
송재 서재필선생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였습니다. 1896년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고 윤치호, 이상재등의 도움을 얻어 독립협회를 창립. 국민의 성금을 모아 한국독립의 상징으로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의 경비에 바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였으나 1951년 1월5일 미국에서 서거하였습니다.
북쪽으로 향한 공원길을 따라가자 독립관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독립관은 원래 1407년(태종 7년)에 중국사진을 영접하기 위해 지어진 영빈관으로써 초기의 이름은 모화루. 1429년(세종 11년)에 확장 개축되면서 모화관이라 개칭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4칸의 필작지붕 구조로 되어있는 조선시대 한식 목조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입니다.
한말에 이르자 국제관계의 변화로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던 모화관을 서재필 선생이 독립협회를 새우면서 독립관이라 개칭하고, 애국토론회를 개최하여 자주, 민권, 자강사상을 고취시키는 독립운동의 기지로써 사용하였습니다. 그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독립운동 탄압의 한 일환으로 이 건물을 철거해버렸다가 1989년 독립공원 조성계획에 의해, 그 일부 자리에 지상 1층(168평), 지하 1층(114평)의 구조로 독립관을 복원 한 것이랍니다.
이 지상 1층에는 국권회복을 위해 신명을 마치신 순국선열의 위패 3,000여 위를 봉안하여고혼을 위령하는 추모의 장으로써 이용토록 했고, 지하 1층은 순국선열 후손들이 모여 위훈을 기리고,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며 또한 이를 선양하기 위한 학술 및 기념 행사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3.1 독립선언기념탑과 독립선언서
독립선언기념탑은 1963년에 탑골공원에 세워졌으나 공원정비사업을 삼청공원에 방치 되었다가 다시 이곳으로 옮겨 놓아졌는데, 지하철을 나오자마자 즉시 접할 수 있는 이 탑은 공원으로 발걸음을 처음 놓게 되는 자리로 공원을 취지를 위해서라도 제 위치에 자리잡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북쪽으로 더 올라가게 되면 한적하고 쾌적한 공원길이 지속되기도 하며, 위의 첫 사진 안의 게단길을 통해 올라가면 자연의 푸르름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둘러싼 철망 주위입니다. 그 주위엔 자연을 더 친근하게 느끼도록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온 도심속 아이들의 모습이 꽤 많이 보입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주위와 입구 모습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공부가 돌수 있는 아주 좋은 역사의 현장이라고 생각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요~역사관 안의 옥사 내부며 그 당시 모습을 재현한 모습이며 그 잔해들로 하여금 백번 말 해주는 것보단 느끼게 하는 교육이 훨씬 효과가 크리라는 것을 저 역시도 느낄수가 있었던 좋은 방문이었던 듯 싶습니다.
다음 글에서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보기로 하고, 야간에 찍은 공원사진 몇장 덧붙입니다.
이상은 모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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